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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방식

직원이 20명이 되기 전에 HR 제도부터 만들지 마세요

2026. 9. 10

‘인원이 제법 늘었으니 우리도 이제 HR 제도 좀 만들어볼까?’

초기 소수 멤버들이 신뢰를 기반으로 일할 때에는 느슨한 규칙만으로도 충분히 잘 운영되다가, 새로운 구성원이 합류하거나 인원이 증가하기 시작하면 기존의 느슨한 규칙에 자꾸 예외 상황이 발생합니다. 혹은 ‘회사답게’ 운영해야 할 것 같은 느낌에 ‘HR 제도’를 만들어야 할 것 같은 고민이 시작됩니다.


제품, 사업, 조직이 일정 수준으로 안정적인 궤도에 진입하기 전까지 스타트업에서는 조직의 역할, 사업 방향, 리더십 구조가 계속 바뀝니다. 이때 평가·보상·승진·직급·휴가 같은 제도를 완성된 형태로 만들면 오히려 이런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제가 가장 자주 접했던 이슈를 예로 들어볼까요?

“최근에 회사 상황이 바뀌면서 리모트 근무 제도를 다시 없앴는데, 몇몇 구성원에게서 갑자기 급격한 사기 저하가 나타났어요. 그분들의 부정적인 마음이 조직 전체로 번질까 봐 걱정이에요.”

회사는 사업 성과를 달성하고 소통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리모트 근무 대신 전원 대면 근무로 전환해야 하는 시기를 맞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리모트 근무’가 입사할 때부터 회사를 선택한 중요한 조건이었거나, 만족도가 매우 높은 제도였다고 생각하는 구성원이라면 단순히 ‘회사의 결정’을 따르는 것만으로는 급격한 동기 저하와 저몰입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그럼 초반에 HR 제도를 아예 만들지 말아야 할까요?
어떤 기준으로 조직 운영을 설정하면 좋을까요?


초기 조직의 진짜 문제는 제도의 부재가 아니다

대부분의 초기 조직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제도가 없어서가 아니라, 기준이 공유되지 않거나 모호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구성원들은 “평가제도가 있느냐”보다 “내가 무엇을 잘해야 하는지 알고 있는가, 공정하게 대우받고 있는가, 필요한 정보를 제때 받는가”를 훨씬 더 직접적으로 경험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가장 강력한 조직 운영의 근거로 작용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때는 ‘대표나 리더’의 행동 양식과 말, 대화, 일하는 방식이 가장 강력한 표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대표나 리더가 가진 암묵적 가정이 조직 운영에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만약 대표, 리더가 ‘AI 기술 활용’에 꽂혀 있는 상태라면, 구성원 중 AI 기술을 빠르게 학습해 실무에 적용하는 사람이 칭찬받고 인정받을 확률이 높습니다. 그 영향으로 어떤 구성원들은 AI 활용에 몰입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묵묵히 과업의 우선순위에 따라 조직의 성과에 중요한 기여를 하고 있던 구성원이 이 과정에서 인정받지 못한다면 ‘우리 회사는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 거지?’라는 의구심과 조직에 대한 불신이 생길 수 있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KPI 기반의 평가제도’를 따로 만들고, 보상 정책도 따로 설계한다면 HR 제도는 의미도, 실효성도 갖기 어렵습니다.


제도보다 먼저 만들어야 할 것

조직 운영의 목표가 조직 내 신뢰감 형성과 동기와 몰입을 이끌어내는 것이라는 데 동의한다면, 초기 조직에서 우선 필요한 것은 촘촘하고 잘 설계된 HR 시스템이 아니라 ‘의사결정의 기준’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함께 모여 있고, 어디로 향해 갈 것이며, 어떤 가치를 중심으로 결정하고 실행할지에 대한 공감과 신뢰가 HR 제도 설계보다 훨씬 중요합니다.

사실 이 의사결정의 기준은 HR 운영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이 기준이 있어야만 ‘어떤 사람을 채용할지, 어떻게 판단할지’, ‘어떻게 소통할지’, ‘어떤 사람을 인정하고 발탁할지’, ‘어떤 사람에게 보상이나 포상을 할지’, ‘조직 운영의 최소 규칙은 무엇인지’를 아우르는 일관성과 정체성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제도보다 운영 원칙이 먼저입니다.


그렇다고 HR 제도를 미뤄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그럼 20명 전까지 아무 제도도 만들지 말라는 뜻인가요?”

아닙니다. 물론 법적으로 필요한 근로계약, 취업규칙, 급여·근태 관리, 휴가·휴직 기준 등은 조직 규모와 관계없이 정비해야 하는 영역입니다. 또한 대표와 리더에게 아직 기준이 없어 구성원이 반복해서 혼란을 겪는 영역은 작은 기준부터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무작정 특정 회사, 특히 대기업의 HR 제도나 복리후생을 벤치마킹하는 것은 매우 위험합니다. 산업, 업종, 역사, 조직 규모, 창업자의 경험 등에 따라 모든 조직은 고유한 특성을 지니고 있고, 어느 하나도 동일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다움’을 찾아가는 것 역시 장기적인 경영 원칙을 만들어가는 데 중요한 발걸음이라고 비유는 믿고 있습니다.

만약 현재 조직에서 가장 중요한 전제와 본질적인 가치를 중심으로 조직의 몰입과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조직 운영 방식이나 HR 제도가 있다면 빠르게 설계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구성원들과 그 제도가 설계된 이유와 배경에 대해 충분한 공감대를 이루는 것 역시 여전히 설계만큼이나 중요한 과업입니다.


그래서 HR 제도를 도입해야 할 시점은 ‘20명’이 아니라 ‘복잡도’다

구성원 20명은 절대적인 기준이라기보다 하나의 신호가 되는 기준입니다. 숫자보다 더 좋은 기준은 다음과 같은 순간을 마주하기 시작했는지 살펴보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이 반복된다면 조직 운영과 HR 제도화의 신호가 될 수 있습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인원수가 아니라 조직의 복잡도가 대표 개인의 기억과 관계만으로 관리되지 않는 순간입니다.

이때 필요한 것은 조직을 무겁게 만드는 거대한 제도가 아니라, 반복되는 혼란을 줄이고 의사결정과 협업의 기준을 공유할 수 있는 최소한의 운영체계입니다. HR 제도를 만들지 말자는 뜻이 아니라, 우리 조직의 현재와 앞으로의 성장을 감당하기 위해 어떤 기준이 필요한지 먼저 확인하자는 뜻입니다.

좋은 HR 제도는 조직보다 앞서가며 현실을 억지로 끼워 맞추는 제도가 아닙니다. 조직이 실제로 일하는 방식을 명확하게 정리하고, 다음 성장을 안정적으로 감당할 수 있도록 돕는 제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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